내가 데드리프트를 진지하게 마주한 순간은, 운동이 잘 안 풀리던 시기였다. 보충제도 늘리고, 프로그램도 바꾸고, 장비도 업그레이드했지만 몸은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읽은 견유학파 이야기가 머리를 때렸다. “자유는 더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절제하는 데서 온다.” 그 문장을 떠올리며 다시 바벨 앞에 섰다. 프리웨이트 데드리프트는 그날 이후 단순한 근력 운동이 아니라, 견유학파의 자제술을 몸으로 실천하는 의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견유학파의 자제술이란 무엇인가
디오게네스의 삶을 처음 ‘이해했다’고 느낀 순간
견유학파의 자제술(ἐγκράτεια)은 책으로 읽을 때보다, 몸이 힘들 때 더 잘 이해됐다. 디오게네스가 맨발로 걷고, 빵과 물로 연명하며, 굳이 불편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는 이전엔 과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데드리프트 세트 중반, 허벅지와 허리가 동시에 타들어 갈 때 그 선택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자제는 포기가 아니라 통제
견유학파의 자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욕망을 내가 통제하는 상태였다. 크라테스가 말한 “욕망은 배 속에 산다”는 표현은, 데드리프트를 하며 욕심 내다가 폼이 무너질 때 생생하게 다가왔다. 무게를 줄이는 선택이 패배가 아니라 통제라는 걸, 그때 처음 체감했다.
프리웨이트 데드리프트의 본질적 경험
왜 머신이 아닌 프리웨이트였는가
스미스 머신 데드리프트도 해봤지만, 솔직히 말해 거기엔 긴장감이 없었다. 반면 프리웨이트 데드리프트는 바벨을 잡는 순간부터 집중이 시작된다. 바닥에 놓인 바벨은 도와주지 않는다. 디오게네스가 사회의 보호를 거부했듯, 이 운동은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린다.
기술보다 먼저 오는 ‘자제의 요구’
기술적으로는 힌지, 코어 브레이싱, 락아웃이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에 자제가 필요했다. 무리해서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 기록을 남기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지 않으면 데드는 바로 부상으로 답했다. 이 점에서 데드리프트는 철저히 자제술적인 운동이었다.
자제술과 데드리프트의 철학적 결합
고통을 피하지 않고 선택하다
견유학파는 고통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을 통해 자유를 확인했다. 데드리프트도 마찬가지였다. 숨이 막히고, 손아귀가 풀릴 듯한 순간마다 “여기서 그만둘 수 있다”는 선택지가 항상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남기기로 했다. 고통을 선택하는 경험 자체가 자제였다.
소비주의적 피트니스에서 벗어나다
한동안 데드리프트 기록이 오르자, 스트랩·벨트·슈즈를 더 사고 싶어졌다. 하지만 견유학파의 자제 개념이 떠올랐다. 결국 최소한의 장비만 남겼다. 바벨, 플레이트, 맨몸. 이상하게도 그 선택 이후 데드는 더 안정됐다.
나의 12주 견유학파식 데드리프트 경험
1–3주차 — 욕망을 드러내다
가벼운 무게에서도 ‘더 올리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올라왔다. 하지만 일부러 정해진 반복 수 이상 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몸보다 욕망을 관찰하는 훈련 같았다.
4–6주차 — 고통을 관리하다
무게를 올리면서 고통이 현실이 됐다. 하체와 허리가 동시에 반응했고, 회복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이때 깨달은 건, 자제는 훈련 강도 조절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7–9주차 — 자제의 시험
스트랩 없이 그립이 미끄러질 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 구간에서 그립력과 정신력이 동시에 성장했다. 견유학파가 말한 “욕망을 죽인다”는 게 이런 감각이구나 싶었다.
10–12주차 — 자유를 체감하다
마지막엔 기록보다 느낌에 집중했다. 바벨이 바닥에서 부드럽게 떨어질 때,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웠다. 무언가를 얻어서가 아니라,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아서였다.
신체적 변화와 자제의 결과
몸의 변화
12주 후 데드리프트 1RM은 눈에 띄게 상승했고, 특히 척추기립근과 둔근의 밀도가 달라졌다. 일상에서도 허리가 덜 피로해졌다.
회복과 절제의 관계
수면, 음식, 휴식까지 자연스럽게 단순해졌다. 더 많이 먹기보다, 필요한 만큼만 먹는 습관이 자리 잡았다. 견유학파식 자제가 운동 밖에서도 작동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정신적 효과: 욕망과 거리두기
고통에 대한 인식 변화
반복적인 데드리프트는 고통을 없애주지 않았다. 대신 고통을 덜 두렵게 만들었다. 이는 일상 스트레스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성취보다 통제가 주는 만족
기록을 세웠을 때보다, 욕심을 참았을 때 더 큰 만족이 왔다. 디오게네스가 말한 자유가 이런 감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현대 피트니스 문화에 대한 개인적 성찰
쉬운 길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머신, 프로그램, 패키지는 편하다. 하지만 편함은 자제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데드리프트는 늘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를 구분하게 만든다.
견유학파적 훈련 태도
견유학파는 세상을 떠난 게 아니라, 세상을 과도하게 필요로 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 역시 데드리프트를 통해 운동을 떠난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 필요로 하게 됐다.
결론: 바벨을 들며 욕망을 내려놓다
견유학파의 자제술과 프리웨이트 데드리프트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바벨은 언제나 땅에 있고, 들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나는 매번 선택한다. 들어 올리기로. 그리고 그 선택에는 항상 자제가 필요하다.
디오게네스가 통 속에서 자유를 찾았듯, 나는 바벨 아래에서 자유를 배웠다. 데드리프트는 가장 무거운 운동이지만, 가장 많은 것을 내려놓게 하는 운동이었다.